<경인방송> “일제강점기 수탈의 대상에서 한국대중음악의 중심지로”…인천 부평 ‘삼릉마을’
(앵커)
세계인이 주목하는 K-POP의 시초가 인천 부평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음악인들의 터전이자 한국대중음악의 뿌리였던 부평의 역사를 알리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강신일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일제강점기 일본 육군의 무기공장인 조병창이 건설됐던 부평.
군수공장 미쓰비시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대거 동원되며 지금의 부평2동 일대에 마을을 형성했습니다.
물자와 노동력 수탈의 아픈 기억이 남아있는 ‘삼릉 마을’입니다.
그런데 해방 이후 미8군 보급창인 에스캄이 들어서며 부평은 한국대중음악의 산실로 변모합니다.
당시 유행했던 팝 음악이 공수됐고, 미군을 상대로 한 음악클럽도 성행했습니다.
특히 삼릉은 서울 용산 미8군의 오디션을 통과한 음악인을 실어나르던 정거장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삼릉에는 당대 최고라 불렸던 음악인 100여 명이 거주할 정도였습니다.
부평, 그 중에서도 삼릉은 명실공히 한국대중음악의 뿌리이자 중심지였던 것입니다.
민간단체인 애스컴시티뮤직아트페어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부평과 삼릉의 대중문화역사를 알리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그 중 하나로 당시 음악인들의 출퇴근 장소였던 지금의 동수역 3번 출구 앞에 표지판을 세웠습니다.
표지판에는 당시 출근을 위해 모여 있는 음악인들과 이들을 태우러 온 미군 트럭들의 모습이 그림으로 묘사됐고, 하단에는 미8군 클럽 음악인 픽업 장소라는 제목과 구체적 설명이 적혔습니다.
지금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부평과 삼릉이 세계인이 주목하는 K-POP의 시초가 됐다는 것을 알리는 의미입니다.
[인터뷰 / 이장열 애스컴시티뮤직아트페어 대표]
“미8군 클럽의 오디션을 통과했던 음악인들이 이곳(삼릉)에 거주했고, 픽업 장소가 이곳에만 있었다는 것이 유일성을 가지고요. 그들의 활동들을 기리는 표지판을 제막하는 것이 첫 시도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거죠.”
일제강점기 수탈의 대상에서 해방 후 한국대중음악의 뿌리로.
음악도시 부평의 역사를 알리는 의미있는 시작점입니다.
경인방송 강신일입니다.
강신일 riverpress@ifm.kr